가시도 없고, 소리도 없는데 어느새 녹아버린 에너지의 정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왜 이렇게 피곤하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커피를 마셔도, 푹 자도, 아무 일정이 없어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 이 지침.
그 이유는 꼭 업무량이나 바쁜 일정 때문만은 아니다.
때로는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애매한 눈치 하나에도
우리의 정신 에너지는 서서히 갉아먹힌다.
오늘은 우리가 왜 그렇게 쉽게 지치고, 알게 모르게 에너지가 고갈되는지,
특히 사회생활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피로 유발 상황들을 나누어 보려 한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어도, 내면은 소진 중
가면을 쓰고 웃을 때마다 깎여 나가는 에너지
사회생활에서는 많은 감정을 숨기게 된다.
기분이 좋지 않아도, 예의상 미소를 지어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특히 회의나 모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자리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처럼 보일지에 대한 신경을 온몸에 곤두세운다.
‘내가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을까?’
‘그 말, 내가 너무 과하게 반응했나?’
이런 자잘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며 에너지를 빼앗는다.
게다가 감정을 숨기는 일이 반복되면,
스스로도 내 감정이 뭔지 모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혼자 있으면 허무하고 멍한 기분.
별일이 없는데 자꾸 쉬고만 싶은 이유는,
우리가 겉으론 아무 일 없어도, 속으로는 끊임없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모호한 태도와 눈치 게임, 생각보다 피로하다
"아까 그 말, 기분 나빴나?", "왜 대답이 짧지?"
사회생활에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건 ‘일’보다 ‘사람’일 때가 많다.
특히 애매한 태도, 분위기 눈치, 읽씹이나 짧은 답변처럼
명확히 말은 하지 않지만 불쾌함이 느껴지는 순간들은
우리의 감정을 점점 피로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대화 중 한두 번 짧은 반응이 돌아오면
‘기분이 안 좋은가?’, ‘내가 뭔가 잘못했나?’
자꾸 되짚게 되고, 불필요한 자기 검열이 시작된다.
또 어떤 사람은 애매하게 예민한 태도로
항상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 사람의 기분을 살피고, 분위기를 맞추는 데
에너지를 쏟고 나면 하루가 더 지쳐 있다.
이런 관계 속 눈치 게임은
‘문제는 없지만 긴장감이 있는 상태’를 만든다.
몸은 가만히 있어도, 머리는 계속 움직이는 거다.
그 무언의 긴장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소진되고 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나 자신
내가 나를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법
우리는 대부분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한다.
“성격 좋다”는 말을 듣고 싶고,
“배려심 있다”, “센스 있다”는 평을 받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이 들어주고, 맞춰주고, 손해도 감수한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는 기대가 생긴다는 거다.
남에게는 ‘신경 안 써도 되는 일’인데
나는 혼자 속으로 삭이고,
‘내가 이 정도쯤은 참아야지’라고 애써 넘긴다.
하지만 이런 자기 억제는 결국
나 자신을 가장 크게 지치게 만든다.
거절하지 못해 무리하게 일정을 맞춘 날
마음은 불편했지만 웃으며 넘긴 말
속으로는 억울했지만 입을 다문 순간들
이런 작은 자기 배신들이 쌓일수록,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할까’ 하고 무너지게 된다.
감정의 사용량도 ‘에너지 소비’다
우리는 흔히 ‘일’만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감정도 사용하면 고갈된다.
애써 웃고
애매함을 해석하고
참는 선택을 반복하고
이런 것들 역시 내 안의 에너지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그래서 ‘별일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싶은 날,
그건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에 소진된 것일 수 있다.
이제는 내 감정의 흐름에 더 예민해지고 싶다.
피곤함을 피곤하다고 느끼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쉬는 시간을 허락하고 싶다.
우리 모두,
말하지 않아도 힘들 수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지침을 조금 더 당연하게 받아들여도 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나부터라도 말이다.